2020년4월1일 수요예배 설교

인도의 성자 썬다 싱(Sadhu Sundar Singh)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어느 대학교수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오랫동안 젖어온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힌두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종교를 바꾸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때 썬다 싱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죽음의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부활로 해답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부활은 사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부활은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을 역사적으로 /실제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부활에 실제를 말씀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에 부활을 믿는 것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우리 신앙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부활에 대하여 불신한다면 모든 것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의 인내도 /바라는 소망/ 선한 일에 대한 수고와 봉사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는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역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이 부활에 대하여 증거 했습니다.
 
15:1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 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 진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확고히 심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15:2
 
그래서 바울(자신)이 전한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에이케) 믿지 아니하였다면 구원을 받는다고 2절에 말씀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는 복음을 굳게 지키면 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 잠시 동안 믿다가 시험의 때에 믿음을 저버리고 아무렇게나 믿는 것 )을 뜻하는데 부정적으로
 
표현 했을까요? 고린도 교인들에 복음의 내용을 올 바르게 알고 또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약간의 불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복음의 내용을 바르게 알고 또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불안해하고 있을까요?
 
고린도 교회에는 부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과/ 더불어 육체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헬라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부활이 없다 하는 상반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부활에 대한 확실성을 제시하기 위해서 그 부활의 실제증거와 역사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첫째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결과라는 것입니다.(3)
 
둘째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이 존재하며 더 구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8) 그래서 주님의 부활을 몇몇 사람의 조작에 의한 결과로 보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셋째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 자신의 회심에 의해서도 입증된 다는 것입니다. (9-11). 사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기독교 신앙을 핍박하던 바울이 가장 위대하고 헌신적인 복음 전도자로 변화된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이것이야 말로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을 증거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너무나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세 가지 증거가운데 첫 번째 ? 예수그리스의 부활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결과이다.
 
15:3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를 위하여죽으신 대속 적 죽음이고 이 죽음은 예수님 자신의 결정이나
 
돌발적 사고에 의하여 되어 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대로/ ‘성경대로’ / 즉 예수의 대속에 대하여 이미 구
 
약 곳곳에서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22/12/ 22/ 53/9:26 /12: 10)
 
그래서 그 성경대로
 
15:4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이 복음에 핵심인 죽으심과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증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고 증거 되어야 하는 이유는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더불어 죄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알려해 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두 번째 증거를 말합니다. 두 번째 증거는
 
게바(베드로)/열두제자에게/와 오백여 형제들/입니다.
 
15:5
1)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첫 번째 증인이 게바 (베드로)입니다.
 
사실 복음서들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특별히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급은 하고 있다(24:34 ; 16: 7)
 
그런데 바울이 본 단락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베드로를 가장 앞세운 것은 초대 교회 당시 베드로가 가장 신임 받는 주의 일꾼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은 부활한 예수께서 게바 에게 보이신 후에 열두 제자와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셨음을 말씀합니다.
 
실제 예수께서는 열두제자들에게 보이시기전에 /막달라 마리아와(16: 9-11) /무덤을 찾은 여인들(28 :9.10)/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24:36. 43)에게도 먼저 나타보이셨습니다.
 
그러고 난후 열두제자들에게 보이셨는데 부활의 증인으로 열두제자들을 언급한 것은?
 
초대 교회 당시 예수 부활의 핵심적인 증인이 바로 이 예수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증인으로
 
15:6
오백여 형제에게 라는 뜻은?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지금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을 직접 목격한 자들의 가감 없는 증거에 있었습니다.
 
지금 2000년 지난 지금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해도 역사가 일어나는데 예수님에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이일을 전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다음은 증인으로 야고보입니다.
 
15: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에 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신 것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외경인 히브리인의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고보가 예수님에 동생 야고보인줄 어떻게 아느냐?
 
사실 예수께서 지상에 머물며 사역하셨을 때는 그분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예수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난 경험을 통해서 변화되어 예루살렘 교회의 종신평생 감독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에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든 사도들입니다.
 
모든 사도들이란 누구를 뜻하는 것인가? 초대교회 당시 널리 사용되었던 사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16: 7)/ 바나바(1414)/ 그리고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 2:6) 등 이 속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바울을 돕던 이런 사람들이 때에 따라 사도들로 언급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이런 모든 사람들에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목격자는 바울 자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5:8
 
바울은 예수 부활의 마지막 목격자로서 자신을 제시한다.
 
물론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부활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행9 장에 다메섹에서 의 경험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부활의 마지막 목격자인 자신을 뭐라고 합니까?
 
만삭되지 못하여? “갑자기 태어난 아이와 같이” “10달 다 채 우지고 못하고 일찍 나온 조산아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만삭이 되어서 난 아이와 같다고 한다면 / 자신은 달수를 채 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와 같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을 표현하기를
 
15:9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이며오히려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은 본 절의 문장 순서를 원문과 달리 번역했다.
 
원문의 순서를 살려 이를 다시 번역하면 나는 사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 인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이다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인하여 자신이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이며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는 자라 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이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나 사도가 된 것은? 누구의 은혜이다.
 
15:10
 
바울은 이 한 구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도합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바울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자신은 그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단순한 감정적인 감사나 은혜로 여기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뭐했다?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부활에 확실성에 믿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을 따른 것인지에 /대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15:11
 
바울은 바울 자신을 포함한 /그들이(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복음을 들은 고린도 교인들 너희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이제 복음의 핵심 요소에 속하는 부활을 그들 이 전수받았던 그대로 계속해서 믿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복음을 믿을 것인지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부활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에 기초는 부활 신앙입니다.
 
이 부활신앙은 지금같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는 원동력입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어려운 시대가 올 때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또한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부인하든 안 하든 역사적 실제 사건이며
 
그 부활의 은혜는 믿는자에게 오늘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부활신앙 붙잡고 끝까지 승리해서 주님이 머지않아 오실 것인데 그때 부활신앙으로 기쁨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에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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