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9 수요일 설교
부활이 어떻게 가능한가? 부활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고전15장 35:-49)
계속되는 부활에 대하여 오늘은 우리가 부활할 때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답을 얻는 본문입니다.
35절
부활에 회의적인 사람이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그 두 가지 질문이 무엇이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1) 부활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는 것이다. 2) 만일 부활이 가능하다면 ‘어떤 몸’ 으로 부활 할 것이냐고 하는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36절
바울은 자신의 부활 사상을 곡해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어리석은 자’ 라고 부르고 있다.
자기 지혜를 내세우며 기고만장 하던 고린도 교인들을 자연 현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본적인 창조 능력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로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우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심겨진 씨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씨앗이 죽음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듯이 우리의 육체도 죽음을 통해 새로운 형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요 12:24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 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란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37절
믿는자 가 그리스도 재림 시에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를 언급합니다.
즉 씨를 뿌릴 때 뿌려지는 것은 단지 씨 알갱이뿐이지 그 씨가 썩고 다시 살아 성장한 후의 형태로 뿌려지는 것은 아니다.
뿌려진 씨와 거기서 자라난 식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뿌려진 씨와 자라난 식물이 전혀 다른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별개의 독립된 개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라난 식물은 바로 그 씨앗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적 현상처럼 죽은 자의 부활은 비록 사람이 씨를 뿌리는 것처럼 죽지만 그러나 씨가 자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되게 하는 것처럼 죽은 사람에 모습을 다르게 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누구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음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38절
모든 부활체가 부활 이전의 육신의 상태와는 다른 새로운 몸의 형태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에 의하여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부활체의 모양’ 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디자인’ 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심겨진 씨앗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능력 에 의하여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타나듯이 부활 후의 인간의 육체도 하나님의 주권적 인 뜻과 능력에 의해 새로운 몸의 형체로 변모할 것을 말씀합니다.
39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형체가 같지 않고 다양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디자인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립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죽은 자의 몸의 부활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의 형체가 각기 다르듯이 부활체도 부활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모양을 갖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40절
하늘에 속한 형체와 땅에 속한 형체가 각각 다양함을 말합니다.
땅에 속한 형체들이 드러내는 영광과 하늘에 속한 형체들이 드러내는 영광이 다르듯이
부활의 몸도 지금의 육체가 지니는 영광과 다른 영광을 지니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41절
하늘에 속한 형체인 천체들 간에도 각기 그 영광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심지 어 같은 종류인 별들 간에도 그 영광이 각기 다르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죽은 자의 부활은 어떤 모습인지를 설명하시는데? 대조법으로 설명합니다.
42절 (썩을 것을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대조
육체가 죽어 썩어지겠지만/ 부활 할 때에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합니다.
이러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43절 (욕된 것, 약한 것/ 영광, 강한 것)의 대조
‘욕된 것’ 이나 ‘약 한 것’ 것 즉 죄로 말미암은 인간이 타락해서 질병이나 고난, 그리고 환난에 빠질 수밖에 없고 선한 것을 행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이제 이 모든 것에 벗어나서 더 이상 죄악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오염됨으로 인하여 육체적 허약함에 시달릴 뿐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에 있어서 패할 가능성이 많은 이 세상에서의 육체와 달리, 허약함이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 날것을 말씀합니다.
44절(육의 몸으로 심고(육의 몸이 있고 ) /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남(영의 몸)대조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덧입은 육체적 생명력을 갖는 몸으로 심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 되살아난 몸’, ‘부활을 통해 장차 오는 세대에 덧입게 될 몸’으로 바뀔 것을 말씀합니다.
45절 (첫 사람 아담/ 마지막 아담의 ) 대조
자연인을 대표하는 첫 사람 아담이 단지 ‘산 영’ 즉 생명 있는 존재에 불과한 반면, 성도를 대표하는 마지막 아담 곧 의 뜸 되는 존재, 원형적 인간, 그리고 천상의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 즉 ‘생명 을 주는 영’ 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즉 ‘산 영’ 으로 표현된 첫 사람 아담은 죽음의 지배 아래 있는 육적인 몸을 대표하는 존재로 언급된 반면,
‘살려주는 영’으로 표현된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다시 생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영생하는 몽을 입은 신령한 부활체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언급된 것이다.
46절 (육의 사람/ 신령한 사람)의 대조
영적인 몸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이 먼저요, 그 다음에 영적인 몸이다” 이라는 뜻이다.
하나는 하늘 에 속해 있고 다른 하나는 땅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47절 (첫 사람은 땅에 나서 흙에 속했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고)의 대조
‘첫 사람 은 땅에서 났으니’라고 언급하고, 이어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언급하여 아담과 그리스도를 극명하게 대조하고 있다.
48절 (흙에 속한 자들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하늘에 속한 이와 같다)를 대조
‘아담’ 과 ‘아담의 후손들’ ‘그리스도’ 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들’ 을 가리킨다.
그런데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다고 한다.
이는 흙으로 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아담과 같이 흙으로 이루어주셔 생기를 얻은 자연적인 몸 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성도들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은 단순한 생령이 영적인 존재로 바뀌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것은 바로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9절 (흙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음/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음)
아담이 타락한 이후 모든 인류는 계속해서 이와 같은 몸을 입고서 ‘죽은 자의 부활’의 날까지 타 락의 상태에서 살아가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흙에 속한 자들이 흙에 속한 아담과 같은 존재의 모습으로 살다가 모든 성도가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죽은 자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몸으로 살 것인가? 하는 고린도 교회 일부 성도들의 질문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대조를 통해서 설명을 합니다.
대조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은 우리에 모든 신앙에 기초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설명을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 때 우리에 부활 신앙은 확실해 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힘써 암으로 우리에 부활 신앙을 더욱더 굳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에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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