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22일 수요일 예배 설교

부정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활
 
오늘 본문 29절 이하 34절까지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할 수 없는 근거와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29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면서도 오히려 부활을 기대함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세례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의 자기 모순적인 행위에 대한 바울이 잘못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30
30절부터 32절에서는 자신의 삶을 실례로 부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찌 자신의 일행이 그토록 자주 위험을 무릅쓰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다.
 
바울과 일행들이 그토록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이와 같이 고난을 당하다가 죽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1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어구가 끝 부분에 등장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이것이 문장 서두에 바로 등장하여 이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날마다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젊어지는 것(고후 4: 10)이요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계속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과 아울러 늘 죽음의 한계선상에서 씨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그 사실그들이 이교적 풍습과 우상 숭배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에 동화되지 않고 구별되어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그 사실을 바울은 자신의 자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자랑인 고린도 성도들을 두고 맹세할 때에 바울 자신은 부활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2
이 구절에서는 바울이 직접 맹수들과 싸웠다는 말이 아니라 에베소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격렬하게 싸웠던 것이 다만 인간적인 관례대로 한 것이라면 바울 자신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다만 인간적인 목적에서한 예로 자신의 용감무쌍함을 과시해 보이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걸고 그 모든 고난을 감수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 도 없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진정 죽은 자가 부활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내 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는 표어는 너 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부활의 교리를 왜곡하는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부활의 교리를 왜곡하는 표현을 사용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 없이 현실의 쾌락을 쫓아 사는 사람들의 괴변과 속임수 에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34
고린도 교인들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고 있다. 첫째는 깨어 의를 행하 라는 것이고 둘째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상적인 쾌락과 미혹에 의한 영적인 만취 상태에서 깨어나 지금 당장 분별력을 찾으라는 호소이다. 고린도 교회에 실제로 계속해서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던 바다름 아닌 그것을 계속하여 근절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토록 거듭 명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포함되어 있어 이 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 하나님이시요그를 부활의 첫 열매 삼아 그에게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살리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의 폼의 부활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행위를 일 절 근절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한다.’라고 언급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곧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라는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그들의 무지를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 대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울이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33)고 말했던 것이다.
 
과연 거짓된 교리가 참되고 도덕적인 행실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뿌리가 상하면 열매는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오늘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것은 바울이 지적했듯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를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의 계획과 그리고 부활의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역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부활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믿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호세아 말씀처럼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그럴 때 바른 믿음생활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우리 또한 부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힘써 알기 위하여 더욱더 말씀에 착념하여 그 말씀대로 살다가 하나님에 방법대로 부활에 은혜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에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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