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일 수요일 예배 설교
고린도 후서 1;1-11 감사와 찬양의 신앙고백
고린도후서는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도직과 사도적 권위를 변호함으로써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의 완전한 화목을 도모하는 한편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기록된 서신서이다.
고린도후서는 1:1-11의 도입부와 1: 12-13: 10의 본론 부, 그리고 13:11-13의 종결부로 이루어 져 있다.
그리고 본론 부는
다시 1: 12-7: 16의 전반부와 제8.9장의 중반부, 그리고 10:1-13:10 의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후서의 도입부로서 4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사도로서의 축도를 전한 1. 2절,
2) 위로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밝힌 3-7절,
3)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구원의 간증 에 대해 서술한 8-10절
4)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기도의 요청 의 내용을 다룬 11절 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바울은 우선 1절 과 2절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적 축도를 한다.
1절
바울은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를 제외한 자신의 모든 서신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힘으로써 서신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고린도후서에서도 역시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12사도와 같이 그리스도에 의해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회심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푼 특별한 은혜로 12사도와 동등한 사도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자신의 사도 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사도 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바울은 디모데를 본 서신의 서두에 언급함으로 그의 교회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본서의 수신자가 ‘고린 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 임을 밝히고 있는 것은 수신자가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고린도 지역과 그 주변에 있는 성도들(아덴과 겐그레아지역) 모두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2절
편지 서두에 발신인과 수신인이 언급된 후 짤막한 인사말과 기원문이 포함되는 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전형적인 편지 양식입니다. 그리고 편지서두에 ‘은혜(카리스)와 평강(에이레네)’이라는 단어는 파벌과 분쟁에 휩싸여 있어 화해의 열매인 은혜와 평강이 절실히 요청되었던 당시 고린도 교회 의 형편으로 보건대 이러한 축도는 그러한 상황에 적실하게 부합하는 말이었다.
이제 ‘위로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를 3-7절에서 밝히고 있다.
3절
먼저 ‘찬송하리로다.’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 이 표현이 등장한 후에는 일반적으로 찬양의 이유들이 열거된다. 바울 역시 찬양의 이유를 4-7절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언급하기 전에 바울은 본 절에서 자신 이 찬양하는 하나님을 여러 다양한 표현들로 묘사한다.
첫째,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이시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 곧 유대인 조상들의 하나님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알려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시다. 이 표현 은 삶의 소망까지 끊어지게 했던 숱한 환난 가운데서 바울이 생생하게 체험했던 자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묘사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 이시다. 바울이 단순히 환난 가운데서 위로받았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난으로부터 건짐 받았다 는 사실까지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위로의 궁극 적인 원천이라는 사실을 밝힌 3절에 이어 4절에서 부터는 그 위로가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4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해 주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을 주시고 또 위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기 위함’ 이라는 것이다.
5절
바울은 자신이 겪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넘친 것같이” 로 번역된 것은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 는 현재 직설법 동사이다. 이는 고난의 차고 넘침이 단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울의 선교 생애에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음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6절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는 것 때문에 환난을 당하며, 또 그로 인해 환난을 너끈히 이길 만한 위로를 받은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는 존재이므로 그리스도 및 바울 일행이 당한 환난과 위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당했던 환난에서 얻은 영적 교훈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가르쳐 줌 으로써 자신의 환난이 고린도 성도들의 위로를 위한 환난이 되게 한다.
하반 절은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이 받는 위로가 고린도 교인들 속에도 역사하여 그들 역시 고난을 견디며 위로받는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울은 자신들의 일행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통하여 고난과 역경 가운데 위로를 체험했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를 소망 하고 있는 것이다.
7절
바울은 바로 자신이 참여한 바 있는 환난과 위로에 고린도 교인들 역시 참여 하리라는 기대 때문에 결코 그들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8절에서 10절까지는 바울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했던 극한 환난을 상기함과 동시에 그러한 환난 중에서 건지신 하나님 의 구원을 간증하는 내용이다.
8절
바울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무게가 바울 자신의 힘으로 는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어서 마침내는 생명까지 위협당하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버렸음을 잘 보여준다.
9절
9절은 환난의 정도에 있어서 8절 내용보다 훨씬 심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고생을 받아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상황에서 오직 죽음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던 상태였음을 말하고 있다.
10절
바울은 9절에 이어 여기서도 자기들을 큰 사망에서 건지신 하나님에 대 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계속하여 밝힌다. 바울은 이제 그 경험에 근거하여 미래에 있을 환난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보호하사 죽음으로부터 건지시는 분으로 그의 보살핌은 과거, 현재, 미래 어느 한 곳에 국한됨 없이 영원히 계속될 것을 말하고 있다.
11절은 고린도 성도를 향한 바울의 기도의 요청인 것은 분명하나 11절 하반 절은 매우 난해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11절
본문에서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으로 쓰여서 ‘간구로써 (by supplication)’ 라는 의미로 이 간구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가리키지만, 마치 성도들이 자신에 대하여 곤궁함을 느끼면서 간청하듯이 하는 간구이다.
바울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비록 남을 위한 중보기도Cintercession)라 할지라도 그 기도는 상대방의 필요를 마치 자기 자신의 필요로 여기고 간절히 하는 간구여야 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 본문에 의미는 ‘너희들이 우리를 위해 간구함으로써 함께 도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시기를 소망한다.’ 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함께 돕는다.’는 개념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 같이 중보 기도함으로써 돕는다(롬 15 :30)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문은 성도들이 중보 기도로 사도를 돕고, 그 기도로 인하여 사도 바울이 죽음의 환경에서 은혜롭게 건짐 받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얼굴들로부터’ 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바로 사람들이 얼굴을 하늘로 향하여 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하며, 성도들의 간절한 중보 기도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사망의 환경에서 건짐 받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자신에 복음 사역의 고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위로에 대하여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살려다 보면 많은 고난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 위로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할 때 경험되는 여러 가지 고난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에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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